라이프/가드닝 텃밭농사

그래도 봄은 온다

seung-garden 2025. 4. 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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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25일 그날! 계엄으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이 마침내 종말을 고하고 문민정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던 그날 나는 첫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오늘! 둘째 아이를 낳은 지 30년 세월이 흐른 바로 오늘 계엄으로 영구 군사정권을 시도한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는 날이다. 이쯤 되면 나야말로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산증인이 아닌가? 이 작은 한반도에서 선량한 시민이 주인이 되어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산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역사 속에서 시간은 흐르고 흘러 문민정부의 시작과 함께 태어난 내 딸이 곧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다. 내 딸이 살아온 30년 보다 내 손주가 살아갈 30년이 더 빛나는 시간이 되어야 할 텐데, 아니 꼭 그래야 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은 자신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목숨을 걸고 일궈낸 누군가의 피의 시간이 담보되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만큼 나도 내 손해를 감수하고 후손을 위해 무언가는 꼭 해야 할 텐데~~

 

물리적으로 추운 겨울이 지나고 정신적으로 추운 겨울도 지나가고 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는 하늘도 시샘하고 땅도 시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이 저만치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주 설레는 맘으로 찾은 승정원에 여기저기 꼬물꼬물 새싹들이 머리를 드는데 갑자기 춘설이 내린다. 겨울에는 이 땅에 오지 않기 때문에 가드닝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눈이 오는 풍경은 처음 본다. 마치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심지어 감동스럽다. 시련이 있어도 봄은 오고야 말았다.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 어린 새싹들이 눈을 맞아 얼마나 손이 시릴까 저어 되는 마음이지만, 그러나 다 이겨내리라는 믿음이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설경인가!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바빴지만 춘설은 아쉽게도 곧 사라져 버렸다. 스쳐 지나가는 눈이니 땅속의 아이들을 생각해 용서한다. 밖에 춘설은 내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우스 안에서는 봄동배추와 시금치가 파릇하게 자라고 있다.

시금치
봄동배추
원추리

지난주 보다 원추리의 싹이 제법 키가 컸다. 세대를 지나 새 생명이 태어나듯 식물도 누런 잎을 뚫고 새싹을 올린다. 원추리의 누런 잎을 보고 생각했다. 작년에 번성했던 저 누런 묵은 잎들이 올해 태어날 새 잎을 위하여, 새로운 세대의 성장을 위하여 잔해를 남겼구나! 새로운 세대를 위한 전주곡을 부르고 있구나! 그냥 존재만으로도 후손에게 풍부한 영양을 제공하겠구나! 누런 잔해는 기온이 오르고 장마를 지나면 땅에 매우 좋은 영양을 제공하고 사라질 것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커서 다시 아이를 낳고~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흐르고 역사가 흐르고 있다.

새로 돋아나는 새싹에서~곧 태어날 내 손주에게서~나는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산불로 고생한 이재민도, 겨울 내내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지켜 낸 시민들도 이제는 제발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