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 말로 순도 100% 태양초 고춧가루는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아마도 건강한 고추와 날씨, 말리는 사람의 정성과 시간 등 삼박자가 맞아야 가능하기에 나온 말일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상 고추가 출하되는 시기가 장마와 겹치기도 하므로 100% 태양초를 만들기란 더욱 쉽지 않다. 그러나 올해 수확량이 그리 많지 않고 마침 시간이 허락하기에 고추에 대한 예의의 차원에서 투철한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100% 태양초 만들기에 도전하였다.
올해 승정원의 고추 농사는 평작이다. 무턱대고 심기만 했던 왕초보인 작년보다 모종의 개수를 절반 이하로 심었지만 수확량은 별반 차이가 없다.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밭에는 이미 빨갛게 익은 고추를 수확하는 시기에 우리 밭은 여전히 풋고추인 상태여서 텃밭주인 아니씨의 애간장을 녹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럽다. 폭염이 지속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고 머물러 준 고추들 덕분에 올해도 고춧가루는 100% 자급자족할 수 있다.
고추 말리는 일은 승정원과 집 두 군데서 진행하였다. 밭에서 오래 머무르면 수확과 세척, 건조과정이 더 수월했을 텐데 며칠 간격을 두고 두 곳을 오가며 관리하다 보니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한계가 있었다. 직접 경험한 고추 말리는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한다.
1. 비록 적은 양이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순도 100% 고추 말리기에 도전하여 성공하였다. 다만 고추 과육의 껍질이 두껍고 단단해야 하고 완숙된 고추이어야 한다. 100% 빨갛다고 생각하여 고추를 따고 나면 아직 덜 익은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수확 후 2~3일 정도 상온에 그대로 두면 후숙이 되는데 이 시간이 꼭 필요하다. 2~3일 지난 후 두세 번 세척한다. 물론 고추꼭지는 따지 않은 상태이어야 한다. 고추 꼭지를 먼저 따고 씻으면 고추 속으로 물이 들어가서 건조에 방해가 된다. 세척한 고추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채반에 널어 아파트 베란다에 두었는데 약 한 달여만에 모두 건조되었다. 적은 양이라서 뒤집어주지도 않았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였는데도 잘 말랐다.
2. 대부분의 많은 고추는 건조기와 햇빛 건조를 번갈아 해 주었다. 비가 온 날은 건조기 50도 10시간을 세팅하여 두 세 차례 반복했으며 건조된 정도에 따라서 햇빛에 다시 널기도 했다. 건조기 세팅 수치는 절대적이지 않다. 고추의 양과 상태, 건조기의 종류에 따라서 다를 뿐만 아니라 당일의 날씨에 따라서 결과물의 차이는 매우 크다. 절대적이어야 하는 것은 고추를 대하는 꺾이지 않는 마음?ㅎ 후숙과정을 거쳐 세척한 고추를 반으로 갈라서 건조기에 넣기도 하였다. 돈 받고 팔 물건이 아니기에 모양이 반드시 예뻐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반으로 잘라서 건조하였다.
첫물고추 따기를 하기 시작한 지 약 두 달여 동안 텃밭에 갈 때마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여 고추를 수확하고 세척과정을 거쳐 건조하였다. 생각해 보니 고추 모종 심을 때 한 번, 고추를 딸 때 한 번, 후숙 할 때 한 번, 세척할 때 한 번, 꼭지를 딸 때 또 한 번, 반으로 자를 때 한 번, 건조기에 넣을 때 한 번, 건조기에서 꺼낼 때 한 번 등 셀 수 없이 많은 손길이 고추에게로 향했다. 그야말로 애지중지 몸과 마음을 오로지 고추에게 바치며 여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추를 빻으러 방앗간에 갔는데 사장님이 내 고추를 보더니 고추가 참 좋다고 하시며 부지런한 사람이 바쁘게 말린 고추라고 말씀하신다. 당장은 색깔이 빨갛지 않아도 음식을 해 놓으면 색이 예쁠거라고 했다. 뜨악! 고추만 봐도 어떤 성격의 사람이 어떻게 말렸는지 안다고 하니 웃음이 나온다. 고추가 말을 할 줄 아는가? 내가 부지런한 걸, 그리고 바쁘게 후다닥 말렸다는 것을 들켜버렸다! 김장용 고춧가루의 시세를 물어보니 한 근에 2만 5천에서 2만 8천원이라고 한다. 7근을 수확했으니 20만원도 채 안 되는 고춧가루를 수확하기 위하여 우리 부부는 봄부터 가을까지 종종걸음을 했다. 둘이서 참 수고했다. 그동안의 땀과 수고는 금액으로 환산불가이지만 맛있는 김장김치가 그 수고로움을 보상해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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