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사전적인 정의는 (1) 국가와 국가, 또는 교전 단체 사이에 무력을 이용하여 싸움. (2) 극심한 경쟁이나 혼란 또는 어떤 문제에 대한 아주 적극적인 대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잡초와의 전쟁이 의미하는 바는 아마도 (2)의 의미에 해당할 것이다. 즉 잡초를 뽑아서 없애거나 제초제를 사용하여 뿌리째 없애는 등의 행위를 통하여 아주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전쟁에서 사람이 승리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산촌의 하루는 대부분 맑은 공기, 파란 하늘, 그리고 새들의 노랫소리와 더불어 시작된다. 얼마나 평화로운가! 그러나 땅에서는 비가 오고 나면 금세 한 뼘씩 자라나는 잡초들로 인하여 전쟁터가 된다. 텃밭의 여린 꽃들과 작물들을 거센 잡초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풀들을 뽑고, 베고 약도 치지만 인간으로서는 역부족이다. 아마도 이기기 위해서는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콘크리트의 틈새에서도 풀이 돋아나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나 역시 꽃밭을 가꾸기로 마음먹은 이후로 잡초 뽑는 일에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뽑아도 뽑아도 또 올라오는 풀에게 내기를 걸며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덤비고 또 덤볐다. 새로 사다 심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의 투지를 불살랐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달음이 왔다. 이 풀들은 태어나서 인간에게 온갖 푸대접을 받으며 거칠게 살지만 꽃을 피우고 번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생명이 온갖 비바람을 맞으며 그저 한 곳에서 하늘만 바라보고 살다가 계절에 순응하며 생을 마감하지 않는가? 과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내 손가락 끝에서 그 생명들을 무참히 뽑아내는가? 뿌리가 안간힘을 쓰며 땅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건만 내 관절에 과부하를 걸면서까지 나는 왜 뽑아내려 하는가?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 나는 지금 왜 또 잡초에게 시비를 거는가?
현재 승정원의 꽃들과 대다수의 작물들도 잡초와 공생하고 있다. 단호박이나 수박과 같은 넝쿨식물은 이미 넝쿨손이 잡초를 휘감아 풀만 제거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다고 잡초로 인하여 작물들이 성장을 멈춘 건 아니다. 분명 인간이 모르는 자연의 법칙이 있으리라. 물론 잡초가 많으면 벌이나 나비가 드나드는 출입구가 좁아지므로 착과율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도 자연의 법칙이지 않겠나? 10개 수확할 거 5개만 수확해서 소중하게 먹으면 그것 또한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가 아닐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작물을 매일 살펴도 부족한데 일주일에 한 번 가는 텃밭에서 잡초를 이긴다는 것은 오만이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 적당히 타협하면 된다. 그중 다행인 건 잡초는 무수히 많은 씨앗으로 내년을 기약할 뿐 뿌리가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얼마나 다행인가? 기막힌 자연의 섭리다.
사실 조금만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잡초의 좋은 영향도 많다. 당장 승정원에서 경험한 것은 이른 봄 잡초더미 사이에서 용케도 월동한 아이들을 많이 발견하였다. 그들의 파워풀한 뿌리 덕분에 경사면의 흙이 소실되지 않고 잘 지켜졌다. 국토의 70%가 산악지형인 한반도에서 잡초가 없다면 눈부시도록 푸르른 신록을 봄부터 가을까지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점을 생각하고 나니 눈에 가시 같던 잡초들이 다르게 보인다. 그리하여 요즘은 잡초와 싸우지 않는다.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꽃과 작물의 광합성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으로 제거하거나 살며시 제초매트 덮어 멀칭하고 태양을 가려서 자장가를 불러주며 재운다. 그리고 서리가 내리면 그들의 생명이 다할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려고 한다. 나에게는 뿌리로 겨울을 넘길 수 있는 수많은 꽃과 나무가 이미 곁에 있지 않은가? 든든하게 믿는 뒷배가 있으므로 잡초에게 조금 관용을 베풀려고 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내일의 잡초가 자란다. 태양과 잡초는 동격이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영역이다. 밟아도, 뽑아도, 약을 쳐도 끊임없이 나오는 잡초의 세계에는 분명 인간이 헤아리지 못하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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