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계절을 잊었다. 모 가수의 노래제목인 '니가 왜 거기서 나와?'를 떠오르게 한다. 지구의 이상고온은 도저히 치료될 수 없는 불치병이 되려나 보다. 한반도의 기후지도도 다시 그려야 하지 않겠나? 작년 같으면 벌써 서리가 내리고도 남았을 시기인데도 서리는커녕 연일 포근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1월 4일 오늘 최고기온은 섭씨 19도이다. 작년 10월 중순 비닐하우스 안에 심었던 김장 무가 밤새 영하로 떨어진 기온 때문에 지상 위의 무청이 바짝 얼어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다 얼어서 김장도 못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낮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녹아서 다시 회복된 것을 분명히 보았다. 겨울이 일찍 찾아오는 강원도 산골이라서 겨울 채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데 올해는 아직 서리도 오지 않고 따뜻하다.
기온에 민감한 꽃들도 이런 날씨가 많이 헷갈리나 보다. 음력 6월 6일에 피는 망종화가 개화하였다. 한 송이도 아니고 무려 네 송이가 피었다. 지금이 음력 6월인 줄 알고 나온 거야?
봄에 개화하는 패랭이 중 상록패랭이가 뜬금없이 개화하였다. 향 패랭이라고도 불리는 이 패랭이 꽃은 작년 이맘때는 볼 수 없었는데 올해는 꽃 얼굴을 보여준다. 긴가민가하며 빼꼼히 머리를 쳐들었다.
올봄에 새로 들인 벨벳 패랭이도 피었다. 잎이 누렇게 변하여 내년 봄에 개화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진한 핑크색 얼굴로 인사한다. 송엽국은 2년 전 심은 것인데 이 아이도 숨어 살다가 뜬금없이 나타나 꽃을 피웠다.
의외의 시기에 의외의 장소에서 개화한 꽃 중에서 가장 의외인 것은 용담꽃이다.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어렴풋이 생각나긴 하다. 월동을 잘하는 꽃이라고 하기에 2022년 가을에 데려왔는데 자취도 없이 사라졌었다. 작년에 만나지 못하였기에 잊고 지냈다. 너무 어린 아가를 심어놓고 바로 겨울을 맞았으니 살 희망이 별로 없다 여겼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났다. 그것도 꽃밭이 아닌 퇴비함 근처 그늘 진 곳에서 두 송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살았어?
혼자는 외로워 두 송이가 피었나? 보라색과 분홍색의 신비로운 조화가 만들어낸 꽃의 색감은 절대 사람의 손으로는 불가능한 채색이다. 한 송이가 개화했다면 애처로워 죽을 뻔했을 거다. 외롭지 않게 나란히 두 송이가 피어 기특하고 대견하고 참으로 예쁘다.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그 흔한 말이 뼛속으로 들어온다. 더위에 약한 아이이기 때문에 비료통이 그늘을 만들어주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생명의 고귀함이란 이런 것이겠지~~생존본능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매한가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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