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4월이야말로 온 천지에 새 생명이 탄생하는 고귀한 달이다. 앙상한 가지가 새 옷을 입고 나들이할 채비를 한다. 드디어 회색빛 추운 겨울옷을 벗고 대지가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설렘의 달이다. 정원 여기저기서 새싹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환경에 이토록 처절하게 적응하는 식물들을 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생긴다.
정원에서 새로 돋아나는 새싹들의 주변에는 작년을 살아내었던, 이미 저 세상으로 간 어미이파리와 가지들의 잔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죽음은 부엽토로 변신하여 스스로 후대를 위한 자양분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이 만든 그 어떤 비료보다 좋은 천연 성분을 뿜어내고 장렬히 전사한다. 후대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고 가는 것이다. 산에 있는 나무가 별다른 거름을 주지 않아도 그토록 해마다 푸르름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은 어미 이파리가 떨어져 스스로를 썩혀 거름이 되고 또 그다음 세대가 그 일을 수없이 반복한 결과물이다. 나무 아래의 시커먼 부엽토 속에서 온갖 벌레들과 이로운 생명들이 살고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 세대를 풍미하다 아낌없이 낙엽을 떨구고 간 이파리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1995년 4월, 내 나이 서른 되던 그 해 나는 둘째 딸을 낳았고 그로부터 30년 후인 2025년 4월에, 첫째 딸이 아기를 낳았다. 세대를 거쳐도 변치 않는 건 새 생명에 대한 고귀함이다. 새 생명에 대한 고귀함은 사람이나 식물이나 다르지 않다. 새로 돋은 새싹들을 보고 있으면 참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함과 동시에 설렘을 안겨주는 그 축복의 언어는 말하면 잔소리다. 환호성은 저절로 따라온다. 땅 위에서 돋아나는 어린 새싹도, 사람이 낳은 작은 생명도 공통점은 언제나 맑고 깨끗하다는 것 아닐까? 아름답고 순수하고 맑은 결정체다. 새싹들을 바라볼 때 저절로 심성이 순화되고 맑아지는 경험을 하였는데, 핸드폰 너머로 본 손녀의 얼굴을 보고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경이로운 경험이다. 새싹들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내 손녀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지켜본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축복이요 행복이다. 나도 나의 후손을 위하여 아낌없이 부엽토가 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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