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참 오묘하다. 사람도 체질에 따라서 추위에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위에 강한 사람이 있듯이 식물도 그런 것 같다. 큰 범주에서 볼 때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지 않은가! 겉으로 볼 때는 똑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겨울에 냉수마찰을 즐기고 누구는 훅 떨어진 기온에 심장에 타격을 입고 하늘나라로 가고~!! 식물도 그러하다. 연약한 잎을 지닌 식물인데 갖고 있는 유전자에 따라 기온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참 경이롭다. 서리를 맞고 검게 변한 식물의 잎사귀가 있는가 하면 서리 내린 땅 위로 어린 새싹을 내밀어 보이는 새로운 생명도 있다. 11월 셋째 주 승정원의 이모저모를 살피면서 인생을 생각하고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김장을 하고 올해의 밭을 마무리했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에 다시 승정원을 찾았다. 자석에 이끌리듯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정선까지 당일 일정으로 간 것은 처음이다. 단풍놀이 한 번 더 한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집을 나섰는데 뜻밖에 꽃들이 반겨준다.
이 빨강 구절초는 지금이 가장 절정이다. 흰색, 주황색, 분홍색 순으로 피었다가 모두 졌는데 유독 빨간색 구절초만이 늦게까지 활짝 개화하여 주인 없는 승정원을 지키고 있다. 이게 뭐라고 마음이 든든하기까지 한다. 올봄에 삽목하여 키운 아이인데 영하의 기온에도 끄떡없이 만개하였다.
이 꽃의 이름은 '뱀무'이다. 장미과에 속하는 다년생식물이며 꽃은 초여름에 핀다고 알고 있는데 봄에 너무 어린 모종을 사다가 심어서 그런지 올여름 꽃구경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11월에 꽃을 피우다니!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예년과 달리 기온이 높아서 계절을 잊은 건지, 아니면 한 번쯤 나를 만나고 싶었던 건지.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꽃을 보고 너무 놀라 카메라 초점도 안 맞았다. ㅠㅠ 잎은 아직 초록초록하지만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다. 내년이 기대되는 식물이다.
봄에 심은 다섯 종류의 찔레꽃 중 벨벳찔레와 웨딩찔레꽃이 수줍게 개화하였다. 장미는 해충에 약하고 찔레는 장미와 꽃이 비슷하지만 해중에 강하다고 하여 몇 포기 심었는데 봄부터 지금까지 피고 지고를 반복하고 있다. 폭염에 힘들어하기는 하였지만 서늘해지기 시작하면서 활기를 찾았다.
지난주 서리를 맞고 정말 검게 변했었는데 다시 포근해진 날씨 덕분에 재차 기운을 차렸다. 강한 생명력이 참 경이롭다. 어차피 월동 안 되는 품종인지라 보온에 신경 쓰지도 않았다. 줄기를 화분에 삽목하여 집으로 데려올 걸 후회가 된다. 내년에 한 포트 다시 구입할 예정이다.
찔레와 장미를 교배한 품종으로 낙엽성의 키 작은 나무이다. 승정원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원래는 하얀색 꽃인데 이렇게 분홍색 감도는 꽃이 피었다. 정말이지 이 색감 어쩜 좋아! 가시가 있고 꽃의 외형은 작지만 향이 은은하게 나고 보고 있으면 긴 여운을 남기는 꽃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끝도 없이 피고 지고를 반복했다. 꽃이 지고 나서 산뜻하게 이발해 주었는데 다시 잎이 나오고 꽃이 피었다. 잎에는 가을물이 들어 계절을 알리는데 하얀 사탕을 닮은 꽃이 피었다. 나 원 참! 이뻐서 미치겠다. 손톱만 한 이 작은 아이가 추운데 어찌 나들이를 하는가!
올봄에 한 뿌리 데려다 심은 아이인데 자리를 못 잡았는지 성장세가 시원치 않다. 비실비실했지만 뿌리는 살아있을 거라 믿고 내년을 기약했는데 갑자기 꽃이 피었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여간 반갑다. 내년 봄 싹이 나오면 삽목하여 식구를 늘일 생각이다.
아스타의 꽃이 지고 난 후 줄기를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새싹이 보인다. 서둘러 내년 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새로 나온 줄기에서 꽃이 피었다. 나보다 더 부지런하네? ㅎㅎ 식물의 종족 보존의 본능은 인간을 능가하는 것 같다. 인간은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번식에 소홀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작은 식물은 번식에 꽤나 진심이다. 사람이 본받아야 할 요소가 아닐는지!
내년 봄 꽃을 피울 골든벨수선화와 무스카리 싹이 서둘러 올라왔다. 성질 급한 주인을 닮았다. 2023년 가을에 구근을 심어 2024년 올봄 꽃을 보았었다. 그래서 2023년 가을에는 이렇게 싹이 올라온 것을 보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파란 이 여린 싹들이 로제트 상태(Rosette:잎을 따뜻한 땅에 바짝 붙이고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겨울을 나는 상태)로 겨울을 날 지 아니면 저 푸르름을 유지한 채로 겨울을 날 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청화쑥부쟁이도 장기 개화하고 있다. 된서리 정도는 끄떡없다는 듯 청보라색 자태를 뽐내고 있다. 겨울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강원도 산골에서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는 이 강인한 식물들을 보고 지금 투병 중인 친구가 용기를 얻기 바란다. 겨울이 지나면 봄은 반드시 올 것이고, 사람도 식물도 시간에 따라 저물어가겠지만 가끔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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