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끔 충동구매를 한다. 충동구매의 대상은 예쁜 옷도 아니고 멋진 가방도 아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은 더더욱 아니다. 지난 7월 13일 뜨겁던 여름날 정선 5일장에 나갔다가 그만 들깨모종을 충동구매하고야 말았다. 들깨 씨앗을 사다 놓고는 파종을 차일피일 미루다 시기를 놓쳤구나 생각하고 있던 참인데 들깨 모종을 파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덥석 들고 왔던 것이다. 한 판에 100개인데 더 작은 단위로는 팔지 않는다고 하여 모두 가져왔다. 마침 감자를 캐고 난 자리가 비어 있어서 옳다구나 했던 것이다.
들깨는 꿀풀목 꿀풀과 들깨속 식물로 우리가 흔히 먹는 깻잎이 바로 들깨의 잎이다. 오메가 3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영양학적으로 각광받는 식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참깨보다 들깨를 더 좋아한다. 향이 강하여 호불호가 갈리지만 식이섬유가 많아서 변비를 완화시켜 주는 효자 식재료이다. 감자를 캐고 난 빈자리에 심었기 때문에 퇴비를 따로 넣지도 않았으며 심어만 놓고 별다른 관리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쑥쑥 자라서 약 3개월 후 들깨송이가 무르익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검게 변한 송이는 깨알이 여문 것이고 아직 초록의 아이들은 여물어가는 중이다. 심한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옆으로 누운 아이들을 옆지기가 줄로 묶어 줘서 겨우 연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들깨도 다른 여타의 식물과 마찬가지로 종족 보존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10월 13일 들깨를 베어 바닥에 비닐을 깔고 세워 놓았는데 비를 맞았고 다시 일주일 후에 하우스 안에 들여놓았다. 자라는 기간에는 방치했어도 상관없었는데 수확 이후에는 손이 많이 갔다. 그러나 수확해서 건조과정에 있는 들깨는 옆을 스치기만 해도 향기가 코를 찔렀다. 저절로 웃음이 날 정도로 진한 향을 내뿜는다. 그로부터 다시 열흘 후인 10월 30일에 결국 내 어머니 팔순 노모 옥분여사의 손길을 빌어 깨를 털었다. 말려도 소용없었다는~~!!
어디서도 맡아보지 못한 진한 향기가 코 끝을 떠나지 않는다. 번거로운 손길을 필요로 하는 대신 코의 감각에 즐거움을 선사하는구나 생각했다. 참 공평하네! 들깨를 털어 큰 대야에 담고 나니 대견하고 기특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 중 순수한 깨만 선별해야 하는데 어쩌나?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키가 있으면 키질을 하면 간단하다고 하시지만 집에는 키가 없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날려보기도 하고 소쿠리에 넣고 키질하듯 까불리기도 했다. 결국 들깨망을 구입하여 한 겹에서 거르고 두 겹으로 하여 다시 거르고, 네 겹으로 하여 또 한 번!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깨만 선별하였는데 그래도 아직 미완성! 그래도 꽤나 성공적이다. 이 정도면 대만족!
100개의 모종을 심어 약 3kg의 들깨를 수확하였다. 기름을 짤 정도의 양은 아니다. 작황이 성공적인지 아니면 잘 된 것이 아닌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직접 농사지은 들깨가 지금 내 손안에 있다는 것이지 않겠나!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울었다고 하지만 나는 이 한 줌의 들깨를 얻기 위하여 봄부터 들깨타령을 했었다. ㅎㅎ
이 들깨는 냉동실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마치 손님처럼 말이다. 조금씩 꺼내어 들깨탕으로, 또는 각종 음식의 양념으로 사용할 것이다. 수확해서 털기까지의 과정이 다소 복잡하기에 이번 들깨농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여러 번 말했다. 그러나 앞 일을 누가 아는가?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미 내년의 나를 믿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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