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5월의 마지막 날이다. 계절의 여왕이 가고 있다. 내일부터는 초여름의 절기에 들어선다. 수도권 보다 한 달여 늦게 흘러가는 승정원에서 그 시간들을 어김없이 지키고 있는 다양한 꽃들을 소개한다.
수도권에 튤립꽃이 한창일 때 강원도 이곳은 겨우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다른 곳은 작약이 이미 지고 있는데 이곳은 이제야 아주 힘겹게 꽃잎을 펼치는 산통을 치르고 있다. 작년부터 데려온 많은 아이들 중에서 이유도 모른 채 그 강을 건너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도 있었지만 척박하고 돌 투성이인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나를 미소 짓게 만든 아이들도 있다. 200여 km 먼 길을 마치 2km도 안 되는 옆동네 가듯이, 마치 어떤 자석에 이끌리듯이 나는 왜 자꾸만 여기 오고 싶은 걸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 느끼는 어떤 설렘? 나의 두 금쪽들이 아기 때 아프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날 때 느꼈던 어떤 행복감이 꽃에 투영되는 거? 한 달에 기껏해야 서너 번 오는 건데 그때마다 어떤 꽃이 피었을지 기대하게 만들고 어떤 텃밭 채소가 수확의 기쁨을 줄지 또 기대하게 만든다. 이런 기대감이 모여 행복이 되고 힐링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샤스타데이지를 필두로 델피늄과 사계패랭이, 카라, 수국, 비올라는 거의 한 달째 개화 중이다. 작약의 향연이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 길어야 2주 후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다. 장미와 작약처럼 내한성이 강하고 노지월동 갑인 다년생 꽃들은 대체적으로 개화기간이 짧은 편이다. 아마도 서둘러 내년을 기약하는 것이리라. 반면 일년생 화초는 봄부터 서리 내릴 때까지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한다. 씨앗이 자연발아하면 다행이지만 그게 보장되지 않으니 씨앗을 맺고 나서는 씨방이 폭발하듯 터진다. 가능한 멀리 보내려는 번식의 본능이 작용하는 것이다.
계절의 여왕과 이별하지만 슬프지 않다. 백합, 철포나리, 금계국, 원추리, 리아트리스, 뱀무, 가자니아, 범부채, 노란 낮달맞이, 베르가못, 플록스가 다가오는 6월에 개화하려고 꽃을 품고 있다. 어떤 얼굴들과 마주할지 벌써부터 조바심이 나지만 엄격한 자연의 시계 앞에서 나는 다시 기다림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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