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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가드닝 텃밭농사

작약이 피기까지

by seung-garden 2024.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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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의 원산지는 중국이며 미나리아재비과의 내한성이 강한 여러해살이식물이다. 향기가 강하며 홑꽃과 겹꽃의 다양한 종이 있고 5-6월에 개화한다.
 
서정주 님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라며 시 한 구절을 남기셨지만 나는 한 송이의 작약을 피우기 위하여 460여 일을 기대와 설렘으로 그렇게 기다렸다. 작약의 개화기간은 일 년 중 길어야 보름 정도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꽃을 오래 보여주지 않는 것이 얄미워 미루고 미루다가 2023년 2월 초 작은 뿌리묘를 하나 데려왔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한 달 여 고이 모셔두었다가 같은 해 3월 승정원의 땅이 녹자마자 노지에 심어 주었다. 땅 위로 어린잎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더니 잎을 키우며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되어 모든 잎을 떨군 채 겨울을 보냈다.
다시 올봄 드디어 꽃 봉오리를 맺었다. 환희와 기쁨 그 자체, 도대체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너무나 궁금했다. 내 배 안에 열 달 동안 품고 있던 금쪽의 첫 대면만큼이나 설레고 떨렸다. 꽃 봉오리를 머금은 지 여러 날이 지나도 도대체 피지 않는 모습에 애가 닳고 숨이 넘어갔다. 지난주 울 엄니 모시고 왔을 때 아쉬움만 남기고 발걸음을 돌렸는데...주인 없는 농막에서 혼자 필 그 아이가 맘에 걸려 나는 5일 만에 다시 발길을 돌려 200여 km를 달려왔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한 송이가 만개하였다. 분홍색 겹 작약!  내 손바닥보다 더 큰 꽃송이가 아주 매혹적이다.

만개한 작약
만개한 작약과 곧 개화할 작약

작은 뿌리묘 하나에서 네 개의 줄기가 나왔고 각 줄기마다 세 개의 꽃송이가 달렸다. 아직 11개의 꽃봉오리들이 순서대로 개화하려고 줄을 서 있다. 참 사이가 좋다. 절대 먼저 피겠다고 다투지 않는다. 꽃볼의 크기로 다음 순서가 어떤 녀석일지  가늠할 수 있다.

개화 중인 작약
작약 꽃봉오리

꽃에게
언제 피는지 물어서 계절이 다가온다고 했다.
함부로 꺾어내려 해서 잎이 채 피지 않았다고 했다.
크기에 마음 졸이고 있어서 양분대로 자랄 것이라 했다.
행여 폈다가 금방 지더라도 상심하지 말라며 당부했다. (천성호 시인의 '파도의 이름에게' 중)
맞다! 꽃이란 무릇 지기 위해서 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잠시 지는 것일 뿐이다. 곧 새로운 꽃을 피울 테니 말이다.

겹 분홍 작약
올해의 아기 작약들

내년을 위해서 올해도 작은 뿌리묘를 묻어두었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내년 이맘때 나는 또 어떤 꽃얼굴들과 대면할 지...앞으로의 1년 동안 설렘과 기대를 가득 품은 시간들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