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7 - [라이프/가드닝 텃밭농사] - 튤립의 일생
구근(球根)은 땅속에 있는 식물체의 일부인 뿌리나 줄기가 알모양으로 둥글게 비대하여 그 속에 양분을 저장한 것으로 일종의 알뿌리를 말한다. 쉽게 이해하자면 양파나 마늘을 연상하면 된다. 이런 구근류 중 봄에 심는 것을 춘식구근(春植球根)이라고 하고 가을에 심는 것을 추식구근(秋植球根)이라고 한다. 춘식구근은 칼라, 칸나, 글라디올라스 등이 있는데 봄에 심어서 꽃을 보고 난 후 가을에 수확하게 되는데 이는 알뿌리가 추위에 약하여 월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을에 심어서 땅속에서 월동하고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을 추식구근이라고 하는데 수선화, 무스카리, 튤립, 알리움 등이 이에 해당하고 내한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이 가운데 튤립과 알리움은 특히 습기에 취약하여 꽃을 보고 난 후 장마가 오기 전인 6월에 캐내어 보관한 후 다시 심어야 한다. 캐내지 않을 경우 장마를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땅속에서 소실된다. 그러나 수선화와 무스카리는 굳이 캐내지 않아도 월동하며 땅속에서 식구를 늘리므로 안 심을 이유가 없다,
튤립구근을 심고 캐내고 보관하였다가 다시 심는 일은 사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반복하는 이유는 추위가 지나 간 황량한 들판에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봄의 전령사인 꽃들을 저버리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칼바람 매서운 꽃샘추위에 파릇한 새싹을 슬그머니 내미는 그 귀여운 모습을 포기할 수도 없다. 4월 내내 화려하게 꽃밭을 채워주는 이 아이들을 매정하게 모른 척한다면 그건 결코 내가 아니다.
올해 6월에 수확한 튤립구근은 상온에서 잘 말린 덕분에 상태가 매우 좋았는데 하우스 안에 불청객 생쥐가 들어와 여러 개를 도둑맞았다. 오호통재라! 보관을 잘못한 나를 탓할 수밖에~크기가 제법 되는 아이들은 내년에 꽃을 피울 것이고 작은 자구들도 몸집을 불려 내후년을 기대해야 하므로 모두 땅에 심어주었다. 해마다 네덜란드에서 수입되는 튤립의 종류는 수십 여 종에 이르고 그 많은 아이들을 다 가질 수는 없으므로 두 종류를 엄선하여 구입 후 같이 심어주었다. 튤립 구근을 구매하기 위하여 영상을 보던 중 보라색 알리움 꽃이 너무 예뻐 그 아이도 데려왔다.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마치 지름신이 강림한 듯 손가락이 쉬지 않고 바빴다.
수선화와 원종튤립도 구매하였다. 튤립구근은 캐내어야 하지만 원종튤립은 캐내지 않아도 되므로 3~4 종류를 더 구매하여 같이 식재하였다. 구근을 심는 방법은 구근 크기의 약 2배 정도 깊이로 땅을 판 후 묻어주면 된다. 노지에 식재하였기 때문에 굳이 물이나 비료를 따로 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구근에 담긴 영양만으로 싹을 올릴 것이다. 마치 양파나 마늘이 일정한 시기가 되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는데도 싹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승정원 곳곳에 나누어 심었는데 과연 어디에 무엇을 심었는지 내가 기억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마음만은 벌써부터 2025년 봄에 미리 도착하였다. 머릿속에는 정원에 가득 필 꽃들로 이미 채워졌다. 넘실대는 꽃들의 춤사위를 상상하며 호미질에, 그리고 삽질에 노랫가락이 실린다. 내년 4월 꼬물꼬물 꽃들의 싹이 올라올 무렵이면 우리 집에 새 축복이도 태어날 것이다. 꽃은 생명의 탄생이고 희망이며 기대와 설렘이다. 튤립은 말괄량이가 될 것이고 수선화는 개구쟁이가 될 것이며 알리움은 팔짱을 낀 채 그들을 바라보는 골목대장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내 정원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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