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저만치서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는 군홧발처럼 힘겹게, 무겁게 걸음을 옮기다 잠시 멈췄다 또다시 힘겹게 걸음을 옮긴다. 오늘 아침 기온이 영하 11도까지 곤두박질했다. 쉽게 오는 봄이 어디 있으랴! 곧 물러 날 추위가 떠나기 전 아쉽다는 듯 자꾸 딴지를 걸지만 결국 봄은 저벅저벅 무거운 걸음으로라도 오고야 말 것이다.
8일간의 하와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가장 먼저 파프리카 파종을 했다. 여행으로 인하여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그간의 삶의 경험에 따르면 다소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결과적으로는 늦지 않았다는 경험을 수 없이 해 왔으니 결론적으로는 늦지 않았다. 텃밭에서 파프리카를 씨앗부터 키워 낸 경험이 3년 차에 접어들었으니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리라.
어느 날 이마* 트레이더*에 갔는데 그간 보지 못했던 길쭉한 모양의 파프리카가 눈에 띄길래 주저 없이 데려왔다. 이름은 키다리 파프리카이며 품종명은 피콜로이다. 종자의 개량은 참으로 놀랍다. 이 품종을 만들어 낸 이름 모를 어느 농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격은 보지도 않고 무조건 데려왔다. 파프리카 과육은 둥근 모양의 파프리카 보다 수분이 많고 두께는 얇지만 단맛이 하늘을 찌른다. 이게 채소야? 과일이야? 특히 사각사각 씹히는 아삭함이 입안을 기분 좋게 만든다. 반드시 내가 번식시키리라 마음먹었다. 과육은 샐러드로 변신했고 나는 습관처럼 씨앗을 분리하여 말려두었다. 일반 파프리카 씨앗도 같이 말려두었다. 특히 가격이 비싼 주황색 파프리카도 같이 애지중지 말렸다.
일반 파프리카 씨앗은 하나의 몸에서 족히 2백~3백 개의 씨앗을 품고 있다. 어쩌면 저렇게 많은 씨앗을 품으며 번식의 본능에 충실한가? 씨앗 하나하나는 지금은 바짝 말라서 볼품없지만 분명 살아있는 생명이다. 적당한 수분과 환경을 제공하면 분명 자랑스러운 파프리카로 성장할 것이다. 키다리 파프리카는 일반 파프리카에 비해서 씨앗의 개수가 현저히 적긴 하지만 하나 둘 정도를 심을 것이니 나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씨앗을 파종하는 방법은 먼저 포트에 배양토를 가득 담고 물을 뿌려 충분히 적신다. 그다음 나무젓가락으로 중앙에 구멍을 낸 후 한 개의 씨앗을 넣고 흙을 살짝 덮는다. 씨앗 정도의 키만큼 덮어야 하니 아마도 1mm 정도의 흙을 덮으면 되지만 굳이 자로 재듯 하지 않아도 된다. 유연성을 발휘해도 씨앗이 그 유연성을 충분히 받아준다.
작년보다 훨씬 많은 35개의 씨앗을 심었다. 이 아이들이 모두 발아에 성공하여 노지에 정식한 후 나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면 나는 아마도 어느 여름날 내다 팔아도 될 만큼 많은 파프리카를 마주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지 아니한가? 2025년 나의 설렘과 기대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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