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이라는 꽃말을 가진 철포백합은 철포나리라고도 불리며 백합 중에서 가장 늦은 8월에 개화한다. 높이 60~80cm 정도 자라는 구근식물이다. 꽃통의 길이는 15~18cm로 순백색을 띠며 내측은 황록색이 난다. 수술의 꽃밥은 암갈색이며 암술은 수술보다 길다. 꽃은 향기가 좋고 구근의 크기에 따라 5~6송이의 꽃이 핀다. 나팔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나팔나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올해 4월 2일 철포나리 구근 작은 것으로 10개를 새로 구입하여 승정원 돌비탈 아래 경사진 곳에 심었다. 구근식물이기에 배수를 고려하여 경사진 장소로 선택하였고 무엇보다 직사광선이 아낌없이 내려쬐는 양지바른 곳이라 안성맞춤인 장소라 생각하였다. 그로부터 두 달이 흐른 6월 7일 오랜 기다림 끝에 약 3~4cm 정도의 새싹이 올라왔다. 반가운 상봉이었다. 하나, 둘, 셋, 넷, 세어가며 열개가 모두 싹이 올라왔는지 확인하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라 볼 때마다 잡초를 뽑아주며 관심과 사랑을 쏟았다. 자라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다. 다른 백합들이 피었다가 지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달 후 7월 1일에 키만 20cm 정도 자랐는데 꽃망울은 볼 수가 없었다.
7월 25일 방문했을 때 키는 훌쩍 커 있었다. 언제 꽃송이를 물려나 유심히 관찰하는데 별다른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잎의 모양은 5~10cm의 길쭉한 타원형이며 잎자루가 없고 줄기를 감싸면서 어긋나기로 난다. 줄기는 굵고 수직으로 곧게 서서 자란다. 다시 일주일 후 8월 3일에 드디어 꽃을 물었다. 꽃대 하나에 3~4개의 꽃망울을 달고 있었다. 오호~~!! 줄기 끝에 연두색의 기다란 통 모양의 꽃봉오리가 달려있다.
꽃망울이 터질 듯 말 듯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더니 드디어 8월 16일 곧 꽃이 필 거라고 마치 선전포고라도 하듯 진한 갈색의 선을 그려낸다. 선의 윤곽이 아주 유연하다. 딱 보아도 어느 녀석이 가장 먼저 개화할지 알 수 있었다. 그다음 순서도 정해져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얘네들의 개화 순서는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줄기가 꼿꼿하다 하더라도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테두리에 줄을 묶어 주었다. 다시 일주일 후 드디어 한 개가 개화하였다. 그런데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고개를 떨구고 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래? 뒤에다 카메라를 대고 겨우 얼굴을 마주한다. 6개의 하얀 꽃잎이 갈라져 끝부분이 살짝 뒤로 젖혀지며 벌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 6개의 수술은 황갈색이며 그 보다 긴 연두색의 암술이 '나 여기 있소!' 하며 말한다.
철포나리꽃은 자기네들이 정한 순서에 따라 개화하고 먼저 핀 순서대로 시들어가고 있다. 저마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바라보는 방향이 모두 다르다. 하늘은 이미 가을색인데 얘네들은 무엇이 그렇게 수줍어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인지~ 서로 마주 보기조차 부끄러운지 사방팔방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 정도라면 꽃말이 '순결' 보다는 '겸손'이 더 어울리는 건 아닌지~아니면 '외면'? 겸손과 외면도 종이 한 장 차이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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